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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기적

카카메가에서 불구자 발라리 아유마의 치유간증

by 주안의 영광 2022. 9. 29.

카카메가 발라리 아유마 치유간증입니다 

아유마 엄마의 간증입니다. 

발라리 아유마는 완전히 22년동안 불구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발라리를 낳았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아기가 나왔을 때 2002년 8월에 집에서 낳았는데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울지 않았고 목이 약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와 계속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무거웠고, 목은 머리를 잡아주지 못했습니다. 목보다 머리가 무거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습니다. 집 가까이 있는 시스리 병원입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아이를 보더니 세인트 엘리자벳 병원으로 가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척추가 매우 약했고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목이 약했고, 다른 아이들처럼 정상으로 자라나지 못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3개월때에도 앉지도 못했습니다. 정상 아이들은 3개월이면 앉는데 발라리는 앉지 못했습니다. 

또 엘리자벳 병원에서는 피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수분도 부족하고 피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5살때까지 발라리는 기어다니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말도 못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말을 배울 때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자벳 병원에서 돌아온 후에는 다른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7명의 자녀들 중 발라리는 둘째였고, 병원에 다녀온 후로 다른 아이를 가졌고, 또 낳았기 때문에 이 아이를 위해서 병원에 갈 수도 또 돈을 마련할 수도 없었습니다. 

발레리의 오빠는 발라리를 돌보는데 도움을 준 사람 중 하나입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항상 발라리를 돌봐줬습니다. 엄마는 다른 아이를 돌봐야 하고 또 아이를 임신하고 낳았기 때문입니다. 발라리 이후 낳은 다른 아이들은 정상이었습니다. 걷고, 말도 했습니다. 발라리를 낳고 또 아이를 낳고 그 아이와 발레리를 돌보면서 또 아이를 갖고 낳고 이것이 그 집의 상황이었습니다.

 돈이 없었습니다. 사실 발라리는 침도 계속 흘리고 있었습니다. 침을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입에서 항상 침이 떨어졌고, 손은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매우 약하고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컵을 잡으려고 하면 매우 극심하게 손을 떨었습니다. 그래서 컵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8-9살 사이에 앉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의자에서 떨림이 너무 심해서 의자에 앉으려고 하면 항상 떨어졌습니다. 발라리의 오빠는 항상 의자에 앉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지만 항상 발라리는 의자에 앉힐려고만 하면 격렬하게 떨었습니다. 

발라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침대에 눕는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22년을 엄마가 다 해줬습니다. 또 발라리는 소변과 대변도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발라리를 먹이고 항상 와서 체크합니다. 아이가 대소변을 봤는지, 그리고 그 대소변을 치워줬습니다. 

첫째 켈빈은 발라리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엄마가 일을 나가야 했기 떄문입니다. 케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해주러 나갑니다. 농장이나 그런 곳에 가서 일을 하고 저녁에 일당을 받아서 옵니다. 몇개의 동전을 줍니다. 아니면 특별한 경우에 200실링 정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라리는 침을 계속 흘리고 다녔기 때문에 옷도 항상 더러워졌고, 발라리가 있는 주변도 매우 더러워서 빨래와 청소를 항상 자주 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농장에 가서 일을 해주고 동전을 100실링 정도를 받아서 저녁을 마련했습니다. 100실링은 미국 달러로 약 1달러정도 됩니다. 이런 가정에 주님께서 매우 충격적인 방문을 해주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유마가 불구자인 것을 다 알았습니다. 또 가정 안에서도 형제 자매들이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다 정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침을 흘리며 몸을 끌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발라리 바로 다음에 낳은 딸이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걷고 뛰고 정상으로 생활하는데 그 손자가 왜 발라리는 못 걷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발라리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방문하셨을 때 그때서야 마마, 바바라고 부르는 것을 배웠고 그래서 모든 여자들은 마마, 남자들은 바바라고 말했습니다. 

쌍둥이를 낳았을 때, 이웃들이 왔습니다. 쌍둥이는 정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쌍둥이들은 9개월에 죽었습니다.  이웃들은 와서 분명히 발라리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괜찮다고 하나님께서 발라리를 데려가신 것을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발라리는 아프기는 했지만 죽지 않았고, 사람들은 왜 하나님꼐서 발레리를 데려가시지 않을까 쌍둥이를 놔두고 발라리를 데려가시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습니다. 

집에서 발라리같은 완전히 불구인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은 매우 힘들었고, 그래서 하나님께 항상 질문했습니다. "왜 저인가요?" 

항상 집에서 혼자 발라리를 돌봐야 했습니다. 발레리 엄마의 결혼생활은 너무나도 고통이었습니다. 발라리의 아빠는 수감자였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 수감되어 9년동안을 감옥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도 감옥에 있습니다. 그래서 발레리는 아빠를 본 적이 없습니다. 형을 살고 나오면 잠깐 풀려났을 때 또 다시 다른 범죄를 저질러서 다시 감옥에 가고 다시 잠깐 풀려나면 다시 또 다른 죄로 감옥에 갔습니다. 

남편은 있었지만 지속적인 범죄로 감옥에 가 있습니다. 첫째 켈빈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잃었습니다. 켈빈은 24살인데 다른 집의 가축을 치는 일을 하고 돈을 조금씩 보내오고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해서 좋은 직장을 얻지 못했습니다. 다른 형제들과 엄마를 켈빈이 돈을 보내서 살게 하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집에 남아 발라리를 돌봐야 해서 일을 하러 갈 수 없었습니다. 발라리의 할머니는 집에 와서 너무나 불쌍히 여겼습니다. 왜 내 딸이 이러고 살고 있느냐 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발라리 엄마를 다독여주고 격려해줬습니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가 죽고 엄마는 혼자 남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다른 교회에서 발라리 집을 찾아왔지만 발라리 엄마가 교회를 찾아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카톨릭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유마를 그러면 카톨릭 교회에 데려갔냐고 물었더니 아이를 데려갈 수 없었고,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데리고 다닐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카톨릭 교회에 가는 날에는 어린 딸이 발라리와 함께 집에 있었습니다. 

사역회에 합류하게 된 것은, 손자가 어느날 아팠는데 아시시루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에 왔는데 이웃들이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고, 아이가 정신을 잃어서 병원에 데려갔다고 말했습니다. 아침에 손자를 데리고 병원에 달려갔습니다. 길을 지나던 여자들이 아이들이 아프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시스루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었는데 가까이 있었지만,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나 거기 가볼 생각도 안했었는데 그때 그분들이 와서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선지자의 강력한 집회를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지시로 불구자를 찾아다니고, 절름발이와 농인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주 야훼 하나님의 선지자께서 마푸토 모잠비크에서 큰 치유를 베푸셨다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분들에게 그러면 어떻게 그곳에 갈 수 있냐고 물었고, 그 여자분들 중 한 분이 오토바이를 태우는 비용을 주며 데리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발라리는 앉지 못한다고 말했더니 그러면 교회에 와라 걱정할 것 없다고 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태우려고 했더니 또 엄청나게 몸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날 뻔 했습니다. 발라리는 집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운송수단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스루아 제단에서 목사님이 와서 차량을 가지고 제단에 데려갔습니다. 두려운 주 하나님 야훼의 선지자께서 마푸토 모잠비크에서 치유집회를 진행하실 때, 교회에서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방문을 받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마푸토에서의 토요일 치유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주일에 또 치유집회가 끝나고 집에 왔을 때 집에서 발라리와 함꼐 있었는데 발라리가 일어나려고 했고 걷고 싶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도가 있었고 첫 방문이 있었지만 일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푸토 치유집회가 끝나고 목사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다른 집회가 있다고 했습니다. 집회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이로비 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잡후리 운동장에 갔습니다. 주님께서 매우 강력하게 만지셨고 또 제단 거의 가까이까지  몇걸음 걸었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걷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계속 교회에 갔습니다. 많이 걷지는 못했어도 이 교회를 내가 가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이제 9월 18일입니다. 주 하나님 야훼의 권능의 선지자께서 라디오에 나와 교회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때 카카메가 메인제단에서 앉아있었고 발라리가 옆 의자에 앉아있었습니다. 라디오에서 메가 축복을 선포하셨고 갑자기 발라리가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발라리가 말 그대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걸음을 떼며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모두가 뒤로 와서 발라리가 걷는 것을 보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축하했습니다. 

발라리는 걸음을 떼며 교회를 돌아다녔습니다. 22살 제 딸이 이제는 걷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축복하시고 갑자기 걸음을 떼며 교회 모든 곳을 돌아다녔고 매우 안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발라리는 걷고 있습니다. 

지금 고통이 끝나고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주님께서 발라리 아유마를 만지셨을 때 걸으며 지금까지도 걷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항상 집에 찾아와서 발라리가 걷는 것을 봅니다. 집에만 22년을 있었는데 이제 걷게 되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할것입니다. 그래서 발라리는 항상 길로 나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사합니다. 온 마을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가족들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족 안에서도 발라리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제 발라리는 의자에 앉아도 몸을 떨지 않습니다. 소다를 손에 들고 있는 영상도 볼 수 있습니다. 손을 떨었지만 이제는 손을 떨지 않고 자기 손으로 음료병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웃습니다. 정말로 영화로운 일입니다.

하나님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에게 신은 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시고 내 딸을 치유하셨고 지금 발레리는 걷습니다. 주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두 선지자를 더 사용하셔서 불구자를 더 많이 일으키시고 그래서 제가 느끼는 이 기쁨을 그들도 느끼게 되기를 원합니다.

 

 

의사 간증입니다. 

와후두 의사입니다. 32년차입니다. 매우 놀라운 일이 불구자의 삶에 일어났고, 그 가정에 일어났습니다. 

발라리의 병명은 뇌성마비입니다.  발레리의 상태는 자궁 내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그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태어난 즉시 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목이 매우 약했습니다. 태어났을 때 목에 탯줄이 두번 감겨있었습니다. 

또 말을 못했는데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매일 늘어나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이런 심각한 상태가 나아지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알려진 것도 없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기적입니다.  
아이를 낳을때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22살 내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악취가 났습니다. 

그러나 발라리는 복합적으로 모든 것이 개선되었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이야기 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런 성취를 이룰 수 없습니다. 두 권능의 선지자께서 우리에게 와 주신 것에 매우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평생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희망이 살아났고, 우리가 보는 이 기적을 더 전해야 합니다. 매우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 회개와거룩함 사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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